종남 분교 일원
여기 시종에서 나주 쪽으로 다리가 많았는디, 옛날 나주목사가 남해신당에 제 지내러 올 때 건넜던 다리여라. 워서 가져왔는지 큰 바위를 갖다가 놓은 다리들이 많았지만, 저기 한다리는 나무로 만든 다리지라. 여기는 원래는 나주군 종남면이었는디 고종 때 영암으로 편입되어서 우리 면이 되었지요. 금지리 본촌 뽀짝 옆에 한다리란 곳에 시종면사무소가 있었어요. (조사자 : 한다리가 지명인가요, 다리 이름인가요?) 그랑께 그게 동네 이름도 되고, 다리 이름도 돼. 한다리 옆에 마을이 있었는디, 거기에 면사무소가 있었당께. 그란디 지금은 다 …
유명조선 교서관 박사 통훈대부 행 성균관 전적 매헌 성주이씨 이춘복의 묘 숙부인 광산노씨 왼쪽 합장 명경박사 매헌 이공 묘갈명 병서공의 휘는 춘복(春馥), 자가 향숙(香淑)이며 호는 매헌(梅軒)이다. 성주(星州) 를 본관으로 하는 이씨는 신라 말기의 재상으로 고려가 흥기 하자 은덕산 깊은 곳으로 숨어 들어간 휘 순유(純由) 공이 시조이다. 그로부터 13대를 전하여 이장경 (李長庚)의 대에 이르자, 그는 삼중대광(三重大匡) 도첨의정승을 지냈으며 조년( 兆年)을 낳았다. 조년 공은 문과에 급제하여 중대광 정당문학, 집현관 대제학을 …
경암처사 강검수의 묘배위(配位) 유인 경주김씨 합장 경암처사 묘갈명 병서예부터 군자는 조정에 들어가 임금을 진작시키고 백성에게 은택을 이르게 하였고, 조정에 들어가지 못하면 수신하며 의를 실천하였다. 그 행적의 세세한 부분은 비록 갖지 않은 부분이 있더라도 도, 덕이 유명무실하면 더벅머리가 되어 살게 된다. 그래서 높은 벼슬과 지위는 세상을 논하기에 부족하고 곤궁함에 빠졌다고 하여 간단히 그 사람을 말하기도 충분한 것이 아니다. 경암처사 강공은 남쪽 향리의 선배 유학자이다.해산 남쪽에 은거하며 도를 즐기고 덕을 닦아 고금의 성현의 …
행 통훈대부 겸 참례도찰방 문씨의 묘공의 휘는 복형(復亨)으로 자는 내양(來陽) 호는 청하(淸河)로 집안은 남평 문씨이니 그 대수가 매우 길다. 충선공 강성군 휘 익점은 그 중시조가 된다. 누대를 전하여 수문장 명회의 대에 이르러 원종공신이 되었으니, 임진년 왜란 때 남원에서 순절하였기 때문으로 곧 공의 고조부가 된다. 조부는 휘가 계륜(繼 綸)으로 관산에서 금성으로 이사하였다. 부친은 휘가 국보이며, 그 부인은 안동 권씨로 사인인 동형의 따님이다.숙종 4년 무오년 12월 5일 금성 남쪽 종남 연소리에서 공을 낳았다. 어려서는 자품…
참봉 이씨의 묘배위(配位) 숙인 여양진씨 합장공의 휘는 종선(宗善), 자는 사화(士華)로, 이씨는 그 선조가 고성(古城) 사람이며, 고려 때 생원으로 은거한 채 벼슬하지 않았던 휘 황(璜) 공이 시조가 된다. 우리 조선에 들어서는 원(原)공이 계신다. 이원 공은 태종 때 좌명공신이 되었고, 세종 때에는 좌의적 철성부원군이 되었으며, 시호가 양헌공(襄憲公), 호가 용헌(容軒) 으로 휘 곡(谷) 공을 낳았으며, 이곡 공은 지통례문하사(知通禮門下事), 대호군(大 護軍)을 역임하였고, 휘 절(節)공을 낳았으니, 이절 공은 대사간(大司諫)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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