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남마을
쩌그 저것이 월대바우여. 그라고 쩌쪽에 가세 같이 생긴 바우가 가세바우여. 근디 가세바우 뒤로 독을 잘 다듬어서 쌓은 성이 쬐깐 있어. 옛날에는 그 성이 쩌그 오른쪽에 보이는 산이 죽순봉인디 거까지 쭉 싸져있었다고 하드만. 그랑께 가세바우서부터 쭉 내려와서 시방은 수리조합에서 보를 맹그러 썩은 물이 돼야있는 어사방죽을 거쳐 죽순봉까지 독으로 싼 성이 있었다는 거여. 근디 박정O 정권 말기에 수리조합에서 어사방죽에 보를 쳐 맹그면서 허물어 불고, 독들이 빤듯빤듯한께 고것들을 싹 딴 공사장, 지남방조제 공사 한디로 다 갖고 가불었다고…
우리고장에는 웬만한 마을이면 으레 정자가 하나씩 있지만 우리 동네에는 희한한 내력을 가진 정자가 있는디, 저기 마을 안쪽 절터가 있던 자리. 밭 언덕에 아담한 정자가 있는디, 그 정자 이름이 관해정이여. 한자로는 볼 관, 바다 해, 정자 정자로 바다를 관망하는 정자란 뜻인디, 그것이 본래 이름은 관해정이 아니고 후회할 회자를 써서 관회정이라 했어. 그러니까 한자로 볼 관에 후회할 회, 정자 정을 썼다는 얘기여, 그 뜻은 후회를 되돌아보는 정자라는 뜻이제. (조사자 : 얼마나 오래된 정자인가요?) 응 그것이 시방 있는 것은 얼마 오…
옛날 조선시대 나주목사를 지낸 임구령이란 분이 저쪽 구림에 와서 정착했는디, 주변 지세를 살펴보니 상대포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 빠졌다 하는 것을 보고, 양장리와 동호리 사이의 물목이 수 백간 밖에 안 되어서 그곳에 제방을 쌓으면 많은 농토를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재산을 쏟아 부어 농토를 만든 이야기가 있어요. 내가 어릴 적 들었을 때는 무지하게 신기하고 무섭기도 했는디, 지금 생각해도 그것이 사실이라 믿어져. 나만 아니고 우리 마을 어르신들은 다들 믿을 것이요. 아줌씨도 들어보셨지라? (마을회관에 함께 있던 아주머니들 : 지남제…
임구령 목사가 구림에 정착하고 보니 주변에 논이 없어. 평리 그쪽 논이 일부 밖에 없고, 기껏해야 구림 돌정재 아래 뜰 쪼금 있고 다 바다야. 당시 사람들은 서호 바다에서 난 해산물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었고 오히려 농산물이 귀했어. 그래서 임 목사는 바다를 막아 간척사업을 하기로 했어. 당시는 돌도 손으로 나르고, 지게나 우마차가 그나마 장비라면 장비였제. 어마어마한 인부를 동원해서 밥 먹이고, 술 믹이고, 인건비 줘 감시로 몇 달을 해도 크게 진척이 없어. 그도 그럴 것이 뚝방 막는 것이 돌이나 흙인디, 그것이 얼마나 무거워.…
증 이조판서 학성군 김공 신도비명유명조선 황해도 병마절도사 학성군 증 병조판서 김공 신도비명 병서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좌의정 겸 영경연사 춘추관사 세자전 박세채 지음 가의대부 이조참판 겸 동지 경연사 세자우빈객 조상우 씀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홍문관대제학 예문관지춘추관 성균관사동지 경연사 최석정 전서 갈성분위진무공신가의대부황해도병마절도사 겸 황주목사 학성군 자헌대부병조판서 겸 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도총관인 김공의 휘는 완(完)이요, 자는 자구(子具)니 가락국 수로왕의 후예이다. 증조는 한성(漢城)이니 증좌통례요, 조(祖)…
승평군 묘지명조선 증 자헌대부(資憲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 승평군(昇平君) 공의 휘는 이온(而溫) 이고, 자는 자화(子和)로 순천(順天) 사람이며, 대대로 서울에 살았다. 천순(天順) 신사년 이 달 19일 공을 낳았다. 아버지는 휘가 숙선(叔善)으로 가정 연간에 첨지중추부사(僉知 中樞府事)가 되었고, 조부인 거소(去踈)는 순성적덕병의보조공신(純誠積德秉義補祚功 臣)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議政府) 우의정(右議政) 평원군(平原 君)에 증직되었으며, 증조부는 휘가 석명(錫命)으로 수충익대좌명공신(推忠翊戴佐命功 臣) 자…
증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지경연 참찬관 판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 황사수의 묘증 정부인 선산김씨 합장증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지경연 의금부사 오위 도총부 도총관 장수황공 사수(嗣壽) 묘비명 금성산 남쪽 30리쯤 비음면(신북면) 금동에 간좌(艮坐)를 베개로 한 언덕에 넉 자 높이로 봉해진 묘소가 있으니 고 자헌대부 장수 황공이 그요, 정부인 김씨의 옷과 신발을 묻은 곳이기도 하다. 공의 휘는 사수(嗣壽)이니 세종조에 영의정을 지내신 휘 희(喜), 호는 방촌 (厖村) 시호는 익성공(翼成公)의 6세손이며, 숭록대부 증 의정부 우의정 휘 치…
영암문화원 열람실 | 대표자 : 원장 김한남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로55
TEL : 061-473-2632 | FAX : 061-473-2732 | E-mail : ycc2632@hanmail.net
Copyright © 영암문화원.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