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그 봉덕마을 근방에 토질이 아주아주 좋은 밭이 있었는디, 뭐든지 심그면 심는 쪽쪽 잘 자라. 긍게 흙이 기름졌던 모양이야. 거기서 나는 채소로 그 집 식구가 다 먹고도 남었은께.
그란디 어느 날 왜놈들이 들어와서 우리 것 다 빼앗아 가고 먹을 쌀까지 다 뺏어 갔는디, 그 때 왜놈 순사놈이 여그까정 와서 그 밭에다 지서를 세워야겠다고 다짜고짜 뺐어가 부렀어. 그 때는 왜놈들 맘대로 할 땐 께. 뭔 법도 뭣도 없었은께, 억울해도 하소연도 못하고 뺏께 부렀제.
놈의 것 뺏어가서 왜놈들이 거기다 지서를 짓었는디, 죄 없는 사람들 데… 영암문화원쪽지보내기메일보내기자기소개전체게시물
가선대부 공조참판 해주오공 신도비명유명조선국 가선대부 행 공조참판 겸 동의금부사 춘추관사 오위도총부 부총관 통훈대부 사간원 헌납 해주오씨 신도비명 병서통훈대부 전 현릉참봉 월성 최영조(崔永祚)가 짓고, 성산 현재승이 쓰고, 자헌대부 행 종경원(從卿院) 정(正) 완산 이재량(李載亮)이 비액(碑額)의 전서를 썼다.선황제 즉위 10년 계유년, 우리 아버님이 동부승지(同副承旨)로 계실 때 소를 올려 시폐 (時弊)에 대해 진언하였는데 말이 매우 얌전하면서도 강직하였으니, 임금께서 깊이 치하하고 받아들였다. 이에 뭇 권간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 영암문화원쪽지보내기메일보내기자기소개전체게시물
유명조선 증 호조참판 최석징의 묘 증 정부인 원주이씨, 부좌(祔左)아아! 나의 백부이신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부총관 최공(崔公) 은 휘가 석징(碩徵), 자가 현경(顯卿)으로 관향이 해주(海州)인 분이다. 조상 가운데 고려 조에서 시중(侍中)을 지낸 문헌공(文憲公) 휘 충(冲) 공이 계시니, 세간에서 최충 공을 일컬어 해동공자(海東孔子)라고 하였다. 그 뒤 명신(名臣)과 재상(碩輔)으로 고려 조에서 이름을 날린 분이 8대에 걸쳐 있었다.우리 조정에 들어서는 집현전(集賢殿) 부제학(副提學)을 지내신 휘 만리(萬理… 영암문화원쪽지보내기메일보내기자기소개전체게시물
효자 김상순 흠모비영암읍 서쪽 곤이시면(昆二始面)의 김상순(金商順)은 경주를 관향으로 하는 사람이다. 신라 경순왕의 제4자인 경주군(慶州君) 은열(殷說)이 곧 그 집안의 시조이다. 우리 왕조에 들어서는 휘 문기(文起) 공이 있으니, 이조판서(吏曹判書) 를 지냈으며, 충의공(忠毅公) 시호를 받았으며, 호는 백촌(白村)으로 사육신과 의리를 같이 하였다. 이분은 김상순 군으로부터 16대조가 된다. 그 뒤로 규(珪), 잠 (潛)이 서로 이어져 자손이 번성하였으니, 호남의 큰 벌족이 되었다. 부친은 휘가 병희(秉喜)이고, 부인은 밀양 박씨이… 영암문화원쪽지보내기메일보내기자기소개전체게시물
난곡 함양박씨 박우상 혜적비그가 묻힌 곳이 아니며, 그에게 제사 지내는 곳이 아니며, 또 그가 벼슬한 일이 없음에도 그 자리에 비석을 세우고 큰 글자로 깊이 새기는 것은 장차 이어질 세상에 잊지 않으려 함이다. 기이하도다! 영주(靈州)의 천해(泉海)요, 인사(人 士)의 난곡(蘭谷)은 박공이 바로 그러할 뿐이다. 비석이 만들어지자 나에게 글을 지어달라는 청이 들어왔다. 내가 그 사실을 받아보고서 간략히 기술한 것이 다음과 같다.공은 출중하고 호방하며 굳건한 자질이었다. 사람을 아끼고 베풀기를 좋아하여 곳집이 가득하면 할 수 있다고 하… 영암문화원쪽지보내기메일보내기자기소개전체게시물
증 가의대부 동지중추부사 김해김공 유적비일찍이 듣건대 예천(醴泉)과 영지(灵芝)는 그 근원을 속이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김해 김씨 동지공(同知公)의 유적을 자세히 보건데 그 징험이 더욱 크다.공의 휘는 성운(聖運), 자는 차백(次伯)으로 집안은 왕실에서 나와 대대로 빛나는 가문이었으니, 신라를 거치며 번성하였다. 고려 조에는 휘 목경(牧卿)이란 분이 계셨으니, 삼중대광(三重大匡)의 지위에 이르렀고, 휘 보도(普都) 공은 첨의(僉 議)를 지냈으며, 시호가 충간(忠簡)이다. 휘 도문(到門) 공은 상서(尙書)를 지냈다. 우리 조선에 들어… 영암문화원쪽지보내기메일보내기자기소개전체게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