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천해마을
천해평야
천해마을 가을
천해마을
천해교회
내가 집을 살라고 한께, 우리 시아부지가 책을 보시더니,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사라고 하든만. 왜 그라냐 하면, 이 동네가 전부 암반이고 돌로 밑이 막혀서 우리 동네는 물이 없었어라. 물이 귀했제. 그란디 딱 우리 집 땅만 암벽이 안 맥히고, 땅을 팔수록 흙이 좋다고 그람시로 시아버지가 사라고 하든만. 우리 집 우게가 여자 혈 인디, 이 집이 허벅단지라고 했어라. 그란디 내가 꿈을 꾼께, 이 집에가 불이 나갖고 집이 옴막 불에 다 타부렀는디, 꺼만 재가 되든만은 거그서 딱 불덩어리가 생깁디다. 그래서 그 집을 사갖고, 그리 이사 …
선왕산은 장차 왕이 난다는 자린디, 우리들은 그렇게 철썩같이 믿고 살아요. 학산면 천해 쪽에서 선왕산을 바라보면 북 모양의 봉우리가 보이는데 그래서 북봉이라고 하고, 당리는 선왕산 바위가 둘러싸고 있는 모양으로 이곳에서 많은 인물들이 나온다는 말이 있어라. (조사자 : 이곳을 당리라고 하는데 선왕당이 있다는 말도 있던데요?) 당리라 부르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내가 기억하는 것은 선왕산 정상부에 호랑이 굴이 있는디, 과거에는 그곳에서 호랑이가 살았다고 들었어라, 현재는 호랑이 굴 안에서 누가 와서 제를 지낸 흔적만 있습디다…
나는 아홉 살 때 학교에 갔어. 천해에서 살 때 일본 사람 밑에서 다녔는디, 학교는 초안리에 있었어. 그 때 선생이 교토 선생, 히카야 선생이 있었는디, 잊어버릴 수가 없어. 처음 학교 갔을 때는 공부는 별로 안 해, 안 했어. 남자 여자는 완전히 갈라져서 같이 안 놀아. 반도 다르고 남자하고 절대 말도 안 하고 따로 놀았제. 그 때도 강강술래는 더 심하게 하고 놀았고 남자들은 그런 것 안 했어. 해방 되고는 다시 학교에 입학했어. 일본 선생은 없고 일본 말 하면 혼나고 그랬어. 그것이 잘 안 고쳐 지더만. 선생님이 말하면“예”그…
광암 뒷산에 민재라고 있었는디, 해남 계곡 사람들이 늘 다니던 큰 길이여. 여그 절 뒤쪽으로 넘어가는 길이 있는데 그리 가면 계곡이 나와. 계곡 사람들이 독천으로 장을 보러 와서 기를 많이 사 갔어. 인공 때 계곡 토벌꾼들이 민재로 넘어왔어. 영암 토벌꾼은 천해까지 왔고, 해남 계곡 토벌꾼들이 넘어와서 여그 광암 사람 다 죽이고, 묵동에서 소 끄서 가고 마을을 불태우고 그랬지. 광암이 인공을 끔찍하게 겪은 곳이어. 광암에 들어와서는 사람들을 모다 끌어내서 세워놓고 체포위원장 같은 사람이 죽일 사람을 골라냈어. 우리는 작은아버지…
시암바다는 우리 동네 이름이요. 시암을 한자로는‘샘 천’이고, 바다는 똑같이 바다 해를 써서 천해라고 쓴디 그것은 한문이고,‘시암바다’가 본시 여그 사람들이 쓰는 이름이요. 요 일대는 땅에 모래가 많이 포함돼서 엔간하면 이녁 논에다 시암을 파서 썼어요. 모내기철이면 시암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서 농사 지었어요. 시암이 하도 많은께, 바다처럼 많다 해서 시암바다라 했는가 봅디다. 보통 한 마을에 공동 시암 하나로 산 것에 비해 우리 마을은 엄청 많았어요. 여그 시암은 이름이 희한한 것이 많은디, 동냥치시암, 귀신둠벙, 순사시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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