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실버문화학교 교재
도청 소재지가 생길 때 풍수지리학적으로 유불선을 이루는 삼각지 그 중간지점에 자리 잡았다고 했어라. 유불선이 무슨 말이냐 하면, 목포에 유달산, 무안 승달산, 그라고 우리 마을 선황산 해서 세 산을 말하제라. 그리고 우리 마을도 이 선황산 맥을 받아서 자리 잡았어라. 옛날에는 선황산에 호랑이가 살았다고 했는디, 호랑이 굴도 있었어라. 옛날부터 비가 안 오면 거그다가 불을 피우고 기우제를 지냈어라. 선황산에서 기우제를 지냈제라. 내 친구가 젊은 시절에 제관으로 추천이 되었는디, 그때 당시 산고 달이라고 제외되어 부렀어라. 아주 깨…
채지리 비래산에 여근혈 명당이 있어라. 그 명당이 전국으로 소문이 나가지고 풍수지리 하는 사람들은 한 번씩 다녀간 곳인디. 산모양이 여자 궁뎅이 만이로 둥실 해가지고 꼭 그렇게 생겼어라. 그 산중턱에는 묘가 있고 바로 아래 옹달샘이 있는디, 사시사철 물이 안 마르고 졸졸졸~ 흘러나오는데, 그야말로 여자 성기를 꼭 닮은 그런 음부형 명당자리여라. 지금은 비래산에 숲이 우거져서 윤곽이 뚜렷하지 않고 보이지도 안은디, 그때는 볼 만 했제. (조사자 : 그 자리에 묘를 쓴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그랑께 조선시대 때여라, 영암읍 …
옛날부터 사람들이 들려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디, 쩌그 기동마을 위에 학성국 이라고 묘가 있는디, 거기가 고려시대 이전에 큰 마을이 있었어라. 얼마나 마을이 크냐 하면, 외부에서 시집온 사람들이 아침에 물동이 이고 샘에 물 뜨러 가면, 집을 찾아오기가 어려운께 골목에다 표시를 해놓고 왔다 갔다 했다고 해. 그란디 그 묘를 쓰고 그 큰 마을이 폐허가 되었다고 했어라. 그란디 그 마을이 망함시로 기동하고 우리 호음마을이 생겼다고 한디, 옛날에는 호음마을 주변에 전답이라고는 별로 없었고, 주위가 전부 솔낭구가 우거져 있어서 범이 내려와…
옛날 풍수지리를 믿는 사람들은 맹당 자리에다 즈그 조상들 멧동을 쓸라고 환장들 했제. 여그 신포리에 어뜬 사람이 즈그 동네 옆에 맹당 혈자리를 찾았는디, 고것을 파본께 어뜬 놈이 거그다가 즈그 조상을 파묻었더란 말이시. 성질이 난 이 사람이 그 유골을 파내서 옆에다가 그냥 아무께나 묻어 부렀제. 그란디 그 빼들이 누런 것이 틀림없는 맹당은 맹당이더란 말이제. 즈그 조상을 그 맹당에다가 잘 모셔 놓고서 며칠이나 되았을까, 무담시 지게를 지다가 그만 허리가 삐끗하더니만, 그만 그 길로 꼽사가 되야뿌렀제. 꼽사가 되야가꼬 운신도 …
우리 영암군에는 군서면 모정, 덕진면 강정, 도포면 회호정을 합쳐 삼정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는데 모두가 광산 김씨 집성촌이지요. 우리 마을은 회호정이라는 이름이여.‘돌아올 회’자에‘호수 호’,‘정자 정’을 써서 회호정이라고 하는디, 아주 오랜 옛날 우리 마을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진 곳이었어. 그런데 왜 호수가 되돌아온다는 회호정이란 이름이 되었을까. 전해 내려온 애기를 보면 어느 풍수지리에 밝은 도인이 마을에 나타나 이곳은 장차 바다가 없어지는 형국으로 물이 물러가고 없어져서 새로운 땅이 생기리라 라고 예언을 하였다는 것이여. …
영호리 상포 배곶등이 있는데, 옛날에는 도포에서 우도를 막아 간척을 하기 전에는 거기까지 배를 댔어. 이 마을에 조씨들이 살았어, 그런디 집안이 형편없이 살았어 그런디 사람들이 마음씨가 좋아서 사람들을 잘 돌봐주는 그런 사람들이었어, 하루는 동냥을 하는 중이 왔는디, 자기들도 먹을 것이 얼마 없는디, 거그서 조금 덜어서 동냥을 했어 그라고 얼마 있다가 중이 다시 찾아와서는 아버지 묘를 저 앞에 돌들이 있는 곳에 이장을 하라는 것이여. 그래서 가보니 돌 사이에 땅이 있는디, 거그가 게 모양의 땅이여 그렇게 해서 조씨들이 묘를 쓴 게…
쩌그 보이는 저 봉이 옥녀봉이고, 쩌가 베월이여, 베월. 베 실인 올을 말 하제. 그라고 여기가 방두고, 그렇게 보면 옥녀가 베를 짜는 형국이제. 그래서 여그를 베틀, 베월이라고 부르고 있어. 그라고 베 짜면 올이 쩍 벌어지고 그래서 쩌가 이월제고, 거가 베 짬시로 물을 뿌린 우물도 있어. 그라고 여그 보다 북받등 이라고 해, 북받등, 베 짜는 북. 여그는 방두고, 그랑께 옥녀가 베 짜고 있는 형국이 틀림없제. 쩌그 옥녀봉 옥녀는 나주 반남이고, 나머지는 다 시종 금지리여. 옥녀봉 저 여자 뒤로 쭉 뻗어있는 잔등이 옥녀 댕기여.…
우리 마을이 금계포란이라는 명당인디. 달구머리 닭재 닭너머라고 닭 명칭이 많은 풍수지리학상으로 닭 형상의 길지여. 육이오 때는 송호리랑 금바우 이런 사람들이 큰 데서 노래 부르고 가야금도 쳐서 경찰서장 같은 높은 사람들에게 박수도 많이 받았다고 하대. 금바우가 이화여대에 가서 교수가 되었을 때 우리 동네사람들이 거기에 가서 큰 대접을 받고 왔다고 해. 그란디 마을이 한참 망할라고 하니까 아편쟁이가 생겨가지고 대밭 삼백 평에서 아편을 키웠제. 내가 그런 일을 잘했어. 아편도 피우고 했제. 내가 막 결혼을 했던 신혼 때였어. 아…
반남 박씨 시조 묘가 여그 흥정리가 있는디 그 묘 자리가 대한민국 팔대 명당으로 들어가. 그랑께 요 금방에서는 젤로 좋은 명당이제. 그라고 옛날에는 그 주변에가 큰 장이 있어갖고 시종사람들은 전부 그리 장보로 다녔어라. 박씨 하면 다 박혁거세 손이지만 중간에 높은 벼슬하고 그라면 지역 거시기를 따갖고, 그냥 내가 시조다 그래분디, 그 시조가 고려 때 요쪽 영암하고 반남하고 행정을 총괄하는 벼슬을 해서 반남 박씨를 만들어서 시조가 되았어요. 그 묘가 팔대 명당이고 벌 명당이라고 한디, 구전으로 내려오는 설화 같은 이야기가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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