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마을 가을
화산마을
그때 당시에는 영암군에서 군서에 있는 문수암 서당이 제일 큰 서당이고 그 다음에 우리 동네 춘동 열락재가 두 번째여라. 그라면 몽학이 있고 몽학선생은 애기들을 갈치는 선생이고. 큰 선생이 와서 큰 공부를 갈치면 자연히 대학교여라. 지금도 대학교 교수들이 학식이 넉넉한 교수가 갈쳐야. 이럴 태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차근차근 실력이 올라 가제라. 이 서당 열락재서 그전에 무송 현OO씨도 여그와서 공부했다고 하고. 낭산 김준연 씨도 여그서 글을 읽었다고 한디. 그 자료나 유래가 기록으로 쭉 내려왔으면 역사가 되고 그란디 그…
여그 화산부락에 육이오 전쟁당시 경찰가족이 있었는디, 객지에서 경찰로 근무하다가 북한군이 쳐들어 와분께 경찰들이 후퇴하다가 흩어져 불어서 낙오병이 되아갖고 집으로 왔는디, 그때 여기는 인민군이 주둔하고 있은께, 팽상 밑에 고구마 굴에가 숨어 있으면서 구멍만 째끔 남겨놓고 밀봉 해불고 부모들이 밤에 밥만 몰래 넣어주고 그랑께, 동네 사람들도 아무도 모르고 있었제. 이 근방 공산주의 머리 쓴 사람들이 늘 쫓아 댕김시로 부모들한테 아들 내노라고 부모들을 발로 차고, 몽둥이로 때리고, 그라면 팽상 밑에 굴속에서 그 소리를 다 듣고 있음시…
요 아래 노루목은 기동부락과 화산마을 사이에 있는 고개인디, 거그 지형이 노루 모가지처럼 생겼다 해서 노루목이라고 해요. 거그 노루목 자리에 질이 있었는디,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목을 잘라 분 것처럼 질이 요라고 좁디좁게 있었어. 어떤 사람은 그것이 도선국사가 중국에 가서 좋은 명당을 말해 준께, 중국 놈들이 시기가 나서 그 혈을 잘라버렸다고도 합디다. 여은재도 그래갖고 잘랐고, 그랑께 이 근처에 명당이 없어졌다고요, 아무튼 그 질로 줄줄이 다녔어라. 그 질이 좁아서 지양도 많이 쳤는디, 찔개미랑 풀을 한데 쨈매 놓으면 가다가…
조선국 사우당처사 부군 조윤수의 묘유인 죽산안씨의 묘, 가나동 선대의 묘 아래 임좌(壬坐) 방향으로 원래 위치우리 조씨는 창녕이 관향으로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 신라, 고려로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귀족의 지위를 세습하였으며, 경화의 거족이 되었다. 중엽에 이르러서는 임진년, 정유년의 난리를 거치면서 한 지류가 남쪽으로 떨어졌고, 자손들이 이로 인하여 영암의 구림화산 (鳩林華山)에서 살게 되었다. 아마 태호공(兌湖公)부터 시작한 것이리라. 태호공은 휘가 행립으로 공의 고조부가 된다. 증조부는 휘가 경보요, 조부는 휘가 일주이고, 부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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