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해창리 일원
해창 일원
전에는 돈이라고는 없지라. 보리쌀도 먹기 힘든 시상에 돈이 어디 있었것소. 어쩌다 필요한 것 있으면 곡석 내주고 바꿨지라. 전에는 집으로 장사들이 와서 이것저것 팔았는디, 영암 이짝 해창 갯가에서 잡은 것들 폴로 댕기고, 그릇, 옷 할 것 없이 오만 가지 폴러 댕긴 사람이 돌아댕기고, 괴기 장사도 왔어라. 옹기에 소고기, 돼지고기 넣어서 이고 지고 댕김시러 팔았어라. 그런 사람들은 부잣집을 찾아 댕긴디, 보통 사람들은 돈 대신 곡석 주고 바꿔 먹었어. 장사들이 뭐든지 받았당께. 그것 받아다가 자기들 안 사람한테 되팔아서 돈 샀…
옛날에는 참말로 어렵게 살았어라. 여그 가마골 처녀들이 시집갈 때까지 백미 서말을 못 먹을 정도로 가난했지라. 여그는 논이 없고 밭만 쬐금 있고, 앞에는 바다였는디, 하구둑 막은 뒤로 여 앞에 논이 생긴 것이어라. (조사자 : 가마골이라면 무슨 도자기나 기와 굽는 골자기가 있었어요?) 여그 은곡마을을 가마골이라 불러. 본래는 갈마골이었는디 그냥 가마골이라 해. 옛날에 어떤 사람이 여그서 말 물을 먹일라 했는데 물이 없어서“말에게 먹일 물도 없는 곳”이라 해서 갈마골이라고 했다해. 여그는 뒤에 은적산이 있는데도 희한하게 물이 귀해…
우리 영암 도포면에 해창리가 있는디, 옛날엔 나오려면 나리를 건너야 되야. 거그에 힘 쎈 뱃사공이 살고 있었제. 도포면이나 시종면에서 해창 다리로 건너지 않으면 갈 수가 없었은께, 그 사람이 다리를 건네주었지. 도포면 땅에서 해창리로 가는 나룻배를 타고 영암장에 갈 수 있었어. 우덜이 오일 마다 집에서 심은 무며 배추며 쌀 같은 것을 돈사기 위해 항상 건너야 했제. 그랑께 엄청 중요하고, 없으면 안 되는 다리여. 그란디 물이 들었을 적엔 한두 사람이 있으면 이 사람이 나리를 건네주지 않는 거야. 아무리 급해도, 아픈 사람이 …
영호리 상포 배곶등이 있는데, 옛날에는 도포에서 우도를 막아 간척을 하기 전에는 거기까지 배를 댔어. 이 마을에 조씨들이 살았어, 그런디 집안이 형편없이 살았어 그런디 사람들이 마음씨가 좋아서 사람들을 잘 돌봐주는 그런 사람들이었어, 하루는 동냥을 하는 중이 왔는디, 자기들도 먹을 것이 얼마 없는디, 거그서 조금 덜어서 동냥을 했어 그라고 얼마 있다가 중이 다시 찾아와서는 아버지 묘를 저 앞에 돌들이 있는 곳에 이장을 하라는 것이여. 그래서 가보니 돌 사이에 땅이 있는디, 거그가 게 모양의 땅이여 그렇게 해서 조씨들이 묘를 쓴 게…
여그 도포 옆 산은 돼지산이여라. 돼지산이라는 이름은 산 모냥이 돼지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렇게 불러라. 저쪽 해창다리 있는 쪽에서 해질녘에 바라보면 돼지가 다리를 앞으로 꿇고 앙거있는 모양인데 앞쪽이 서도포 자리이고, 뒤쪽 오줌 나오는 자리가 통시암 자리지라. 즉 시원하고 맛 좋은 통시암이 돼지 오줌이라는 소리가 되지라. 그런디 돼지산을 바라보는 산이 있는디, 그 산이 맹수의 모양인지라, 그래서 주변 맹수들이 이짝 돼지를 잡아먹을라 해. 저기 신북 호산에는 호랭이가 노려보고, 도포 봉호리쪽 사자산에는 사자가 노려본께, 항시 불안 하…
육이오 때가 마침 갈대가 많을 참이여. 당시에는 바닷물이 도포 안쪽으로 깊이까지 들어왔다가 빠지고 그랬는디, 수로 양쪽에 갈대가 무성했어요. 하도 반란군들이 설쳐대니 무서워서 바다 속 갈대밭으로 피란 갔는디, 걱서 몇날 며칠을 산 사람들이 있었어요. 집에 남아있던 노인들이 밥하고 된장을 싸서 동우에 넣어서 썰물 때 내려 보내면, 아래서 숨어있다가 그것을 받아서 먹었어. 운조리 같은 것 잡아서 된장하고 먹었제. 먹고 나면 물이 들 때 빈 동우를 띄어 보내. 그라믄 집에 있던 사람들이 동우를 가져가서 다시 밥을 해서 내려 보내고 그랬…
옛날에는 사람들이 요 앞에서 배타고 멀리 댕겼어요. 해방 후에도 돛배가 많이 다녔는디 그것 타고 목포까지 댕겼지라. 앞에 작은 돛이 있고 중간에 엄청 큰 돛이 달렸고 뒤에 젤 작은 돛이 하나 더 있었는디 그것을 치라고 그래어요. 바람이 잘 불면 잘 가요. 짐도 솔찬이 많이 싣고 댕겼지라. 나락가마니도 가득 싣고, 사람도 태고 댕겼지. 바람으로 간 것도 있고, 기계 달아서 통통통 가기도 하고 그랬어요. 배 탈라면 배싹 줘야한디, 성게라고 했어요. 목선 타면“성게를 내놓고 가시오”그랬어라. 여그 해창 앞까지‘영암호’가 다녔는디, …
도포 사람이면 앤만치 알고 있는 이야긴디라, 도포에는 송장다리라고 부르는 다리가 두 개 있어요. 여기 서도포에서 도포초등학교로 빠지는 포장길에 가운데 하나 있었고, 다른 하나는 저쪽 도포면 서리방죽에서 영암천으로 빠지는 수로를 따라 구정마을에서 도포초등학교 가는 옛날 길에 있었어라. 현재 서도포쪽은 큰 다리가 나 버렸고, 구정마을에서 통시암을 지나면 돌로 만든 송장다리가 있었어라. 이름만 들으면 무슨 사람이 죽어나간 다리로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옛날 우리 고장에 아주 힘 쎈 장사 두 명이 살았는데, 한 사람은 서도포에서 태어난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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