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검색 결과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서호면 전체검색 결과

게시판
1개
게시물
9개

1/1 페이지 열람 중


영암설화 게시판 내 결과

  • >

    나 결혼하기 전에 우리 아버님한태 들은 얘긴디요, 우리 가문 산소가 성전에서 강진 쪽으로 가다보면 좌측으로 있어요. 옛날에 따라가서 봤는데 산소 두 개가 있고, 우리 정씨들 산인데, 그 산에가 명당이 있다고 가르쳐 줬어라. 그란디 병영 원님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 산소 위에 명당자리에 몰래 원님이 묘를 쓴다고 했어요. 원님이라서 얼마나 장례식이 휘황찬란했겠어요. 인자 사람들이 관을 뜸어서 그 높은 데까지 올라가서 묘를 쓸라고 했는디, 그때 우리 정씨들이 알고는 모여서 먼 연장들을 들고 올라가서 작대기로 밀고 해서, 관을 아래로… 영암문화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전체게시물

  • >

    우리 매월마을에서 저기 서호로 넘어가는 길에 금굴이라고 있어라. 겁나 질어. 박쥐도 살고 그란디 그 앞을 지나오다가 도깨비불을 봤는디 혼자 본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봤어요. 광주에서 서호면 성재리로 오는 버스 타고 오는디 사람들이 겁나 있어. 옛날 버스 안내원 있던 시절이여. 표받고“오라이”하고 소리치던 안내원이 있었는디, 빡빡하게 타고 온께, 누가 같이 탔는지도 알 수 없어라. 성재리에 도착하면 해가 져. 거그서 내려서 이 산골짜기를 넘어오는 길이 있어. 다들 그렇게 산을 넘어 댕겼어라. 깜깜한 고개를 넘어오는디, 앞에서… 영암문화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전체게시물

  • >

    우리 마을 건너 건지산 아래에서 고기 많이 잡았어. 할아버지가 골짝 골짝 댕기면서 고기를 잡았어. 어디에 숨어있는지 안께 그냥 잡아. 아부지가 물병 들고 따라가서 구경하고 있는디, 하늘에서 모래자갈이 막 퍼 붓더래. 소낙우 오댁기 막 떨어진께 아부지를 불렀겠지. 아부지가“못된 짐승이 사람이 왔으면 좋게 인도할 것이지 자갈짓을 뿌리냐”고 야단을 친께, 모래가 멈췄어. 서둘러 돌아옴서“누가 모래를 뿌렸어”하고 물어본께 호랭이 짓이라고 하더래. 무서워 할까봐 말 안 했다고 함시로, 본시 호랭이가 사람을 보면 막 모래자갈을 뿌린다고 하… 영암문화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전체게시물

  • >

    금계리 초안부락에서 회현마을로 넘어가는 질목에는 삘간 흙으로 덮인 나지막한 산이 있어. 초안부락 사람들은 영암 가는 뻐스를 타기 위해 회현마을로 감시로 그 산을 넘어야 했는디, 송정마을과 회현마을 사람, 특히 애들은 학산초등학교에 다니기 위해 이 산을 매일 넘어 다녔어. 비라도 오면 붉은 흙은 마치 핏물이 스며든 것처럼 더욱 선명해 지는디, 그래서 비가 오면 사람들은 이 산을 넘기를 더욱 두려워했어. 사람들은 흙이 붉은 이유가 사람의 피가 많이 스몄기 때문이라 믿었어. 어린 시절 한 치의 의심 없이 믿었던 이야기인디. 어린이 … 영암문화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전체게시물

  • >

    아천포가 있을 당시에 여기에 김주O 씨라고 있었어. 그 양반이 지금 살아있으면, 백삼십 세는 되었을 거여. 그 양반이 큰 배 열 척을 가지고 있었지. 선원들은 미영으로 한복을 맹그러 입고 댕겼지라. 여그가 바다일 당시에 우렁섬이라는 곳이 있었어라. 그런데 하룻밤에 배가 아홉 척이 다 빠져서 거그서 모두 죽은 적이 있어라. 우렁섬이 옆으로 물살이 엄청 쎘어라. 그런데 이상하게 그 자리에서 삼 년에 한 번씩 그 가족이 빠져 죽어. 비가 올라고 하면 불이 번쩍 번쩍하고 날아다니고 그랬다고 하지. 또 비가 올라고 하면 내외가 막 싸움하는… 영암문화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전체게시물

  • >

    나 어려서 이곳이 바닷길이여서 논이 귀했지라. 그런데 광암 현준O씨가 이곳에 새로운 농장을 만들어서 동네 사람들 일 하게 해준다고 혀서, 바닷길을 막았지라. 배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반대를 혔지만, 다수가 찬성을 하니 할 수 없었지라. 공사는 성재리에서 모종으로 가는 곳까지 막었어라. 덕분에 군서면, 서호면 사람들이 일거리가 많았어라. 표떼기를 일꾼들에게 나누어 주는데 너도나도 그 표떼기 받으려고 했지라. 그때 이 동네엔 나무가 귀해서 광암서 나무를 가져다가 막았는디, 광암서 여까지 한 십리 정도 되지라. 지금은 차가 있어 이삼… 영암문화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전체게시물

  • >

    숙부인, 전주 최씨는 조선시대에 전주 최씨 집성촌인 서호면 금강마을에서 태어났는디, 부모에 대한 효도로 이름나고 이를 눈여겨보던 해주 오씨 가문의 청혼을 받아 가선대부 내수공의 아들인 통정대부 치순 공과 결혼하고 함께 이곳에서 살았지. 최씨 부인의 남편인 치순 공도 효자였는지, 그는 아버지가 여름에 중병이 들어 눕자 팔목이 퉁퉁 부어오르는 고통 속에서도 부채질을 해 아버지의 열을 식혔고, 겨울에는 아버지의 옷을 먼저 입어 따뜻하게 덥혀 입혀드렸으며, 병에 효험이 있다는 약초를 찾기 위해 여러 날 월출산을 돌아다니며 약초를 구해 정… 영암문화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전체게시물

  • >

    영산강 하류의 낮은 바다와 좋은 갯벌이 많아 이 지역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마을 공동으로 영산강 주변의 갯벌을 간척지로 만들어 많은 곡식을 수확하기 위한 제언을 막는 민요가 발달하게 되었지라. 특히 영암 장부질 노래는 서호면 성재리, 태백리, 금강리 일대에서 오래 전부터 불려 내려오고 있는 민요지라. 이 민요는 앞소리와 뒷소리로 나누어져 있으며 앞소리꾼의 노래와 힘찬 농악의 깡쇠소리에 맞추어 건장한 남자들이 언둑을 만들면서 부르는디. 언둑을 쌓기 위해 장부로 흙을 던질 때에는 늦은 장부질 소리를 하고, 언둑이 튼튼하도록 다대기질 소… 영암문화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전체게시물

  • >

    아천포가 있을 당시에, 여그 김갑동 씨라고 있었어. 그 양반이 지금 살아 있으면, 백삼십 세는 되었을 거여. 그 양반이 큰 배를 열 척 가지고 있었지. 선원들은 미영으로 한복을 맹그러 입었어. 여그가 바다일 당시에 우렁섬이라는 곳이 있었어라. 그란디 하룻밤에 배가 아홉 척이 다 빠져서 모두 죽었어. 물살이 엄청 세서 그렇지. 그런데 지금은 매립이 되어가지고 보물도 못 찾어. 본래는 수심이 약 칠십 척정도 였는디 매립이 되었지. 거그서 이상하게 사람이 물에 빠져 죽으면 삼년에 한 번씩 그 가족이 빠져 죽어. 그런데 비가 올라고 … 영암문화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전체게시물




Copyright © 영암문화원 All rights reserved.
PC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