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소마을
우리 연소마을 남평 문씨 시조할머니 묘가 마을 들어온데 입구에가 있어요. 그 할매가 여그 들어 온지 한 사백 년은 되았는디 정유재란 때라고 합디다. 그때 할머니 한 분이 아들 형제를 데리고 와갖고 자손이 천 명이나 되었다고 했는디, 이런 얘기들을 시할아버지께 들었어요. 그라고 문씨 윗대 할아버지들 묘가 쩌그 장흥에 있는디, 묘에서 시누대가 나면 벼슬한 사람이 나온다고 했어요. 그래서 도사 하신 분도 나오고 찰방 하신 분도 나왔다고 말씀 하셨어요. 우리 연소 마을은 이렇게 잔등이 둘러져 있고 마을이 가운데가 들어 있은께, 제비집…
연소마을 들어가다 보면 때락 큰 무덤이 있었는디, 지금은 없어 졌어. 그 무덤을 몰무덤이라고 한디, 말 무덤이라고 부른 사람도 있어. 말을 묻어 갖고 그렇게 큰 고분은 없것제. 그랑께 몰아서 쓴 몰무덤이 맞어. 우리 할아버지 시절에 동네에 호열자라고 전염병이 와서 주변 사람들이 몰사해 부렀는디, 전염병이고 그랑께 낱낱이 묘를 못 쓰고 한꺼번에 몰아서 썼다고 들었어. 호열자가 콜레란디, 쩌그 중계마을 그 쪽에서도 많이 죽었다고 하드라고. 그래서 같은 날 제사가 많아. 옛날 어르신들 말씀이 몰무덤에서 쪼깐 가면 산골이라고 작은 …
옛날 꼰날에 금정면 연소리에 늙은 부부가 살고 있었는디, 늦도록 자식이 없었어요. 어느 날 지나가던 스님이“저기 문수봉아래 쌍계사라는 절이 지금은 없어져 버렸는데 그곳에 절을 새로 지어 공을 드리면 아들을 얻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있는 재산 없는 재산 다 털어서 절을 짓었어요. 그런데 스님 말처럼 다 짓고 난께, 신기하게도 애기가 들어섰다고 해요. 달이 갈수록 배가 태산처럼 커져서 장사가 태어날란갑다 했는데, 출산을 하니 아들이 셋이나 연거푸 나온 것이었어요. 아들 셋이 나온거지요. 아들 셋 쌍둥이가 다들 잘 자랐는데, 그…
사람 고기 먹은 이야기 들어 봤소. 중국 요리집에서 사람을 잡아다가 괴기를 넣었다는 말은 들어 봤지라우. 하도 맛있어서 손님이 많았는디, 손톱이 나와서 들통 났다고 했어라. 그것이 참말인지 몰것으나 내가 직접 들은 얘기가 있어. 내가 인공 후에 군대에 갔는디, 그 때 상사가 하는 소리가 인민군과 전투하다 사람 괴기를 먹었는디 무지하게 짜더라는 얘기를 들었어. 그란디 여그도 그런 얘기가 있더라고. 저기 기모동에서 연소 가는 질에 마을이 있었는디, 인공 때 싹 다 태워버렸어. 피난 갔다 오니까 마을에 아무 것도 안 남고 몽땅 재가 …
사과(司果) 이상서 유허비미암리는 영암 흑석산 아래에 있으니, 사과(司果)를 지낸 이상서가 거처했던 곳이다. 공은 함평 사람으로 고려 신무위(神武衛) 대장군(大將軍) 언(彦)이 그 시조가 된다. 우리 조정에서는 함성군(咸城君) 극해(克諧)가 공의 14대조가 된다. 충순위(忠順衛) 돈(墩) 은 공의 12대조이다. 참봉공(叅奉公) 언기(彦麒)는 공의 9대조이다. 공의 기풍과 위의는 훤칠하고 기질과 절조는 늠름하여 평소에도 향리의 모범이 되었다. 갑란으로 어지러울 때 조병삼(曺秉杉), 이병서(李秉緖)와 논의하여 서로 지키는데 도움이 되었…
문효자 유허비영암은 산골 바닷가 마을이다. 맑고 깨끗한 기운이 있으니 본보기 될 사람이 없으랴? 군의 월출산 북쪽 연소리에 오래된 효자의 유허가 있는데, 지금 효자가 세상을 떠난 지 근 수백 년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지나가는 사람이 손으로 가리킬 정도이니, 그 떳떳함이 고르게 도타웠던 것을 감탄하게 된다. 효자의 성명은 문도형으로 자는 성첨, 본관은 남평으로 강성군 문익점의 14세손이다. 부친은 문덕흥, 어머니는 김씨로 공은 숙종 조 계사년(1713년)에 태어나 정조 조 기유년(1789년)에 세상을 떴다.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행 통훈대부 겸 참례도찰방 문씨의 묘공의 휘는 복형(復亨)으로 자는 내양(來陽) 호는 청하(淸河)로 집안은 남평 문씨이니 그 대수가 매우 길다. 충선공 강성군 휘 익점은 그 중시조가 된다. 누대를 전하여 수문장 명회의 대에 이르러 원종공신이 되었으니, 임진년 왜란 때 남원에서 순절하였기 때문으로 곧 공의 고조부가 된다. 조부는 휘가 계륜(繼 綸)으로 관산에서 금성으로 이사하였다. 부친은 휘가 국보이며, 그 부인은 안동 권씨로 사인인 동형의 따님이다.숙종 4년 무오년 12월 5일 금성 남쪽 종남 연소리에서 공을 낳았다. 어려서는 자품…
통훈대부 행(行) 함경도 도사(都事) 문극효의 묘공의 휘는 극효로 자는 미중(美仲)이고, 풍와(楓窩)가 자호이다. 문씨는 남평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신라 삼한벽상공신 무성공을 비조로 삼는데, 그 실제 사적이 기이하다. 충선공 휘 익점은 고려말의 명신으로 목면을 들여와 옷을 만드는 데 공을 세웠다.이단을 물리치고 바름을 숭상하는데 자신을 잊고 나라를 위해 죽었으니 또한 탁월한 공이 있었다. 우리 태종 대왕 치세에 특명으로 녹훈되고 증직받았으니 강성군에 봉해졌다. 명회(明會)가 수문장이 되었을 때, 철권에 이름을 올렸으니 그야말로 공…
양화인 덕혜불망비 하늘이 이 덕을 낳았으니, 천하의 제일가는 사람이로다. 선함은 도(道)[率性]에서 말미암았고, 바름으로 스스로를 수양하였네. 온 집안을 도왔고, 온 이웃을 복되게 하였노라. 길이 노래하며 잊지 않으리니, 이 사실을 새기노라. 병술 10월 일 연소리 일동 유사(有司) 장□규 최원배 조병선 박사□ 정□원 정대□ 홍순기 조정업 김양□ 이규원天生厥德 斗南一人 善由率性 正以律身 佛於萬家 福於四隣 永言不忘 刻此頊珉 丙戌十月 日 燕巢里一同 有司 張□奎 崔元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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