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구령 목사가 구림에 정착하고 보니 주변에 논이 없어. 평리 그쪽 논이 일부 밖에 없고, 기껏해야 구림 돌정재 아래 뜰 쪼금 있고 다 바다야. 당시 사람들은 서호 바다에서 난 해산물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었고 오히려 농산물이 귀했어. 그래서 임 목사는 바다를 막아 간척사업을 하기로 했어. 당시는 돌도 손으로 나르고, 지게나 우마차가 그나마 장비라면 장비였제. 어마어마한 인부를 동원해서 밥 먹이고, 술 믹이고, 인건비 줘 감시로 몇 달을 해도 크게 진척이 없어. 그도 그럴 것이 뚝방 막는 것이 돌이나 흙인디, 그것이 얼마나 무거워.…
신북에는 잠자는 거인이 있어. 정말 겁나게 커. 언젠간 그 거인이 잠에서 깨어난다고 했어. 거인이 깨어나면 온 세상이 깜짝 놀랄 거여. 왜냐 하면 그 거인을 닮은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거등. 긍께 그 거인을 닮은 위대한 인물이 나오게 되면 수천 년 동안 땅에 누워서 잠자고 있는 거인도 눈을 뜨고 자리를 툴툴 털고 일어날 것잉께 말이제. 긍께 저 거인을 닮은 인물이 땅에 누워 있는 거인의 정기를 받아 태어나게 되면 얼마나 큰 일을 하겄어. 태어난 그 인물은 땅에 누어있는 거인의 분신이여. 그 거인을 볼라믄 월평리 들에…
우리 동네에는 잠자는 거인이 있어요. 정말 겁나게 커라. 언젠가는 그 거인이 잠에서 깨어난다고 했어라. 거인이 깨어나면 온 시상이 깜짝 놀랄 거여. 왜냐 하면 그 거인을 닮은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거등. 그 거인을 닮은 위대한 인물이 나오게 되면 수천 년 동안 땅에 누워서 잠자고 있는 거인도 눈을 뜨고 자리를 툴툴 털고 일어날 것잉께 말이제. 긍께, 저 거인을 닮은 인물이 땅에 누워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거인의 정기를 받아 태어나게 되면 얼매나 큰일을 하겄어. 태어난 그 인물은 땅에 누워있는 거인의 분신이여라. 그…
일본인‘출정’이는 지금 군농협 앞쪽에서 버스 정류소를 했네. 여객버스 여섯 대에 트럭도 있었는디,‘전남자동차’라는 회사를 했어.‘남철’은 광주, 순천을 댕기고,‘신호대’는 목포, 영광을 댕겼네. 또 신문도 취급했는디‘대판조일’‘대교매일’‘경성일보’‘광주신보’‘목포일보’등 미제 그러고 잡화상도 하고, 면화사업도 하고,‘남방’이는 쌍정리에서 정미소를 하고, 지금 오거리 정신약국 자리에서 쌀장사, 석유장사를 했고,‘지상’이는 잡화상을 크게 하면서 상권을 잡았네. 또‘소리’도 정미소를 했네. 해방 후에 하남O 씨가 인수 했어‘평전’이도 …
해방직전에 영암경찰서가 지금 자리로 옮겨 왔제. 그 전에는 장둑골 시암 옆에 있다가 이쪽 좀 높고 널찍한 곳으로 옮겼어. 집도 두세 채 있었는디 경찰서가 고리 온 것이여. 그라고 지금 서남리 중앙교회 자리에‘동유원’이라는 기생음식점이 있었어. 가야금, 북, 창소리가 들리고 한량들이 거기서 놀았어. 일본기녀들이 있는 곳은 일본인 아니면 최고 부자들만 들어 다녔어. 그 골목에‘대문안집’도 있고 농사짓는 일본인‘우지’네가 살았고, 골목 입구에 선씨가 살았제. 그 집에서 일본사관학교 출신 별자리까지 나왔다네. 그랑께 그쪽 경찰서 앞이 …
용흥리 새실부락에 「학남정사」라는 서당이 있었네. 훈장님은 큰 학자로 원체 유명해서 저 먼데서 여그까지 사람들이 배우러 왔어. 그란디 그 훈장님이 월사금을 받지 않고, 그저“글 배워 훌륭한 학자 되어라”,“공부만 잘해 주면 만족하겠다”고 하셨다네. 그 분이 한 스물다섯부터 환갑까지 훈장 노릇을 하셨으니까 삼십육 년간을 했는디, 그 뒤로 칠십일 세쯤에 돌아가셨어. 그때가 인자 칠십오 육 년 전인디, 당시 제자들이 추모회를 조직해서 「보익계」라고 만들어 매년 훈장님의 제사를 모시고 있다네. 정씨 문각이 있고 제자들이 모아서 논 두 반…
영암 참빗은 없어서 못 팔았어. 모다 잘 만든께 전국적으로 유명했지. 저기 담양에서 만든 챔빗은 우리것 따라했지. 심지어 영암산이라고 써서 팔기도 했어. 그란디 그쪽 것은 얼멍얼멍하고 이라고 빗으면 뻑뻑해. 영암 챔빗은 빽빽하면서도 부드럽게 나가. 그것이 기술이지. 하도 잘 폴린께, 망호정뿐만 아니고 저기 송평리, 평장리, 후정리, 배날리 사람들도 만들었어. 돈이 된께 너도나도 기술을 배워갔는디, 그래도 품질은 망호정 것만 못해. 그래도 모다 영암 참빗이라고 해서 팔려나갔어. 원체 인기가 좋아서 전국 장사치들이 선불을 주고 참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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